전세호러스토리

[전세호러스토리] 1부 - 전세사기와 전세보증금반환의 여정 (집주인은 바보인가?)

용쥐 2025. 6. 11. 04:45

프롤로그

 

부동산을 좋아하는 것은 한국인 DNA에 내장된 것인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든다. 남녀노소 그 누구든지 부동산과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임차인 이라면 하루 빨리 돈을 모아서 내집마련을 하는게 꿈일테고, 임대인이라면 더 많은 돈을 굴려서 투자하고 싶은데 당시 고도성장기의 높은 금리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런 임차인과 임대인의 필요가 서로 맞아서 '전세' 제도 라는게 생겨났다. 이 이야기는 내가 그 동안 겪은 힘들고, 화가나고, 한편으로는 공포스럽기까지한 전세금 반환여정 스토리이다. 

 

집주인은 바보인가?

 

나는 아주 어릴때부터 세뱃돈을 받으면 꼬박꼬박 안방 서랍속 반짓고리에 모아두었다. 모든 지폐들을 다 꺼내서 금액을 세보고 앞 뒷면 + 각 위인들의 얼굴 위치까지 맞춰서 정렬해놓는 기괴한 취미까지 있었던 나에게 친척들이 그 돈 가지고 뭐할 거냐고 물어보면 항상

 

'집 살거에요!'

 

라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부모님 입장에선 참 황당했을 것 같기도하다. 집 없이 유목생활을 했던 것도 아닌 애가 계속 집 타령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정말로 DNA에 부동산 유전자가 들어있나 싶기도 하다.

 

왜 그렇게 집 타령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부터 '월세' 라는 것을 걱정했던 것 같다. 내가 300만원을 버는데 그 중 50만원, 100만원이나 월세를 낸다면 그 만큼 내 월급이 줄어두는 것이라 생각하고, 집을 사면 그 월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십여년의 세월동안 모은 돈이 서울 대학가 2-3달치의 월세로 사라질거라 생각하니 그럴수도 있을 것 같다.ㅋㅋㅋ

 

다른 아이들은 아파트 상가 롯데리아에서 치즈스틱 먹을까 불고기버거 먹을까 고민하던 그 때, 나는 공인중개사 벽면에 붙어있는 '매매' '월세' 매물들을 구경하면서 저 돈을 어떻게 모을까 고민했다. 근데 그 중 매매, 월세 말고 처음 보는 단어가 하나 더 있었다. '전세' 였다. 월세는 매 월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이니까 월세인건 알겠는데 전세는 대체 무슨 말일까 너무 궁금했다. 1년치를 한번에 내는거라면 년세 혹은 연세였을 테고, 전체의 전을 의미한다면 반대로 부분세 혹은 분세가 있었을 것이다.

 

전세 공고판을 보면 가격이 억대를 넘어가는 고액의 금액인걸로 보아, 1년치 이런식의 금액은 아닐 것이란 결론을 내리고 엄마한테 여쭤봤다. 그러자 엄마는 전세가 뭔지 설명해줬다.

 

"전세는 집 주인에게 돈을 맡기고 그 집에 사는거야"

 

"그러기엔 너무 비싼거 아니야? 월세 24개월치보다 더 큰 금액인데?"

 

"대신 우리가 이사나갈때 집주인이 다시 그 돈을 돌려줘"

 

'????'

 

처음 이 얘기를 듣고 내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찼다.

 

'아니 그럼 집주인은 바보인가?, 은행 이자 받는거 얼마 안될텐데...'

바보는 나였다 (섣부른 전세계약)

그렇게 전세의 원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못한채 으레 대한민국 중고등학생들이 그러하듯 입시전선에 뛰어들어 국영수탐 과목의 문제풀이 위주에만 열심히 시간을 쏟고 단련했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술들을 익히기에는 한국의 입시판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학과학 문제만 풀줄 아는 똑똑한 바보가 된 채로 대학에 입학 후 나는 통학도 해봤고, 기숙사도 살아봤고, 또 학교앞에 월세방에 자취도 해봤다. 거의 현존하는 왠만한 대학생 주거형태는 다 해본 상태로 군에 입대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내가 군에 입대한 후 몇달 되지않아서 우리가족은 이민을 갔다. (?) 우리 가족엔 나도 있어야하는데 나는 삼척 군부대에 여전히 남겨져 있었고 부모님과 누나만 갔다.ㅋㅋㅋ일단 어이가 없긴 했지만 중요한 사실은 내 '적'이 없어졌단 뜻이다. 휴가기간중에는 노량진 이모네집에 머물렀었기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문제는 전역 후 였다. 전역 후 나도 미국에 건너가서 영주권을 받고 그 후 대학졸업을 위해 한국에 돌아와 머물 곳이 필요했다.

 

자취를 하기로 했는데 그 당시 생각이 짧은 나로선

 

'월세 매달 50만원씩 2년이면 1200만원인데, 전세로 살면 0원이잖아?'

 

라는 기적의 계산법과 우둔한 생각으로 부모님께 차라리 전세에 사는게 어떻겠나 얘기를 드렸다. 사실 그냥 돈 달라는 거였다. 이 이후로 계속 생각하는 것이지만, 남자는 항상 군대 전역 후가 제일 사고칠 확률이 높은 시기인것 같다. 나이는 아직도 20대 초반이지만 괜히 군생활 2년 했기때문에 본인이 뭔가 세상과 사회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은 자만심이 높아진다. 그렇게 난 높아진 자만심과 함께 몇 없는 대학가 근처에 전세매물을 이것 저것 다 알아봤다. 그리고 나서 그-나마 그 중에 제일 적절한 방에 계약을 했다.

 

5-6평정도 되는 방, 학교 강의실까지 도어 투 도어로 도보 10분. 나쁘지않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 당시 내가 얼마나 멍청했나면, 이 건물에 근저당권도 잡혀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중개인과 집주인(대리)이 이정도 금액은 괜찮다고 하는 말에 그냥 계약했다. 한 두푼도 아니고 무려 85,000,000원이라는 거금을. 시간을 돌려 과거로 돌아가면 계약하려고 하는 나의 등짝을 휘모리장단으로 후드려치고 계약서를 파쇄기에 넣었겠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계약을 해버린 것을. 이 계약을 체결 한 것이 2017년 10월 13일이었다.

 

방 사진
방 사진 2
가구가 채워진 후 사진

 

비록 5.5평밖에 되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굉장히 행복했다. 내가 걱정없이 머물공간이 있었고 나만의 사적인 공간도 생긴것 같아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 공간이 나에게 준 만족감 만큼 불안함도 동시에 자라고 있었다.

 

사건은 내가 졸업할 즈음 2020년 연말즈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