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호러스토리

[전세호러스토리] 2부 - 전세사기와 전세보증금반환의 여정 (내 돈은 어디에 있는가?)

용쥐 2025. 6. 12. 00:08

방황의 대가

 

2018년에 난 3학년으로 복학했다. 평범한 코스대로 갔다면 2019년에 4학년을 마치고 2020년 2월에 졸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때도 스무스하게 넘어갔던 중2병이 그 힘을 키워 대3병이 되어서 나에게 덮쳤다. 대학 졸업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혼란이 문득, 정말 어느날 아침 갑자기 강하게 날 휘감아서 그 날 바로 휴학버튼을 눌렀다. 그 당시 일은 나중에 자세하게 포스팅 할 기회가 있으면 하겠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휴학으로 인해 졸업이 1년 늦춰졌다는 점이다. 보통 전세계약은 2년단위로 되어있고 나의경우 2017년 10월 ~  2019년 10월로 되어있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1년 4개월 정도 더 계약을 연장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 '집관리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기서 집관리부장은 집주인은 아니고 집주인의 대리로 사실상 집주인의 모든 역할을 대리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은 계약 연장에 대해 나와 집관리부장의 문자메세지 대화를 내 기억에 의존하여 재구성 하였다.

 

나: 안녕하세요 204호 세입자 용쥐입니다. 제 계약기간이 2019년 10월 12일까지로 되어있는데 졸업이 해당 날짜보다 좀 더 뒤에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약기간을 2021년 2월 28일까지로 연장하고 싶은데 혹시 계약서 다시 작성을 위해 시간을 내주실 수 있나요?

집관리부장: 네~ 그냥 사세요~ 

나: ??

집관리부장: 가격 그대로니까 계약서 작성할 필요 없고 그냥 계속 사시면 돼요~

 

뭔가 이상했다. 아니? 계약서를 안써도된다고? 흠 뭔가 찜찜했지만 사실 내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집주인이 살라고 했으니 뭐 문제가 있을까 싶어서 그냥 살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그 당시 대화내용은 전부다 캡쳐해 놨었다. 그렇게 내 방황으로 인해 2020년에 할 수 있던 졸업을 2021년으로 미루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저 2020년과 2021년의 차이는 단순히 1년의 차이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휴학버튼 누르는 데 5분, 그 5분이 나의 다음 5년을 아주 익스트림하게 만들어주었다.

 

폭탄돌리기 술래

전세제도의 가장 무서운 점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바로 '내가 낸 돈이 내 앞 입차인에게 간다는 점' 이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렇게 예를 들어볼 수 있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는데 반드시 내 낙하산을 내 앞사람에게 줘야한다. 내가 쓸 낙하산은 내 뒷사람이 갖고 뛰어내려준다고 한다. 난 이미 뛰어내렸고 앞 사람에게 낙하산을 던져줬다. 뒤를 돌아봤는데 비행기안에 아무도 없다.

 

어릴 때 TV 예능에서 많이하는 시한폭탄돌리기 게임이 있었다. 출연자가 타들어가고있는 폭탄모형을 차례대로 들고 퀴즈를 맞추면 옆사람에게 넘길 수 있는 게임이다. 전세제도도 사실 이와 비슷하다. 술래는 단 한명이다. 출연자가 몇명인지는 모른다. 많게는 수십명이 될 수도 있지만 중요하지 않다. 내 차례에 터지면 내 피해는 100%, 내 턴을 넘기면 0%다. 이전 포스팅에서 그랬듯이 나는 전세를 주면 집주인이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 전세금을 은행에 넣어봤자 은행이자가 월세로 받는 수익보다 훨씬 낮을텐데 왜 전세금을 받지?'

 

이런 지금 생각만해도 내 낯이 다 붉어지는 미련한 생각을 전세계약을 체결하는 22살까지 하고있었다. 바보X신은 나였다. 내 돈은 이미 나와 집주인 그 누구에게도 없었다. 미래에 내 뒤에 들어올 어느 순진무구한 사람의 계좌에 내 돈이 들어있었다.ㅋㅋㅋ진짜 골 때리는 상황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도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져나오고있다.ㅋㅋㅋㅋㅋ

 

모두가 알듯이 2020년 초 우리가 아는 그 유행병이 도졌다. 당연히 학교는 개강도 미뤄졌고 심지어 한학기 내내 모든 강의가 비대면 강의로 진행되었다. 모든 강의가 '비대면' 으로 되었단 뜻은...학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학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학생들이 더 이상 학교 근처에 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난 코로나라는 폭탄이 떨어지는 곳 한 가운데에 있었다. 코로나로 학교가 문을 닫고 학생들이 학교근처에 자취를 하지 않으니 대학가 부동산 시장은 밑을 잘못 건드린 젠가블럭마냥 빠르게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조금 무너졌을 때 정신차리고 발을 뺐으면 조금이나마 나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의미없는 상상이다. 만약 내가 1년 휴학을 하지 않고 그대로 2020년에 졸업을 했다면 무사히 전세금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 생각 역시 그 당시 사태를 해결해주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론적인 상상이었다.

 

더 놀라웠던 점은 저런 폭탄이 떨어졌고 심지어 그 중심에 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내 돈을 집주인이 야무지게 잘 보관해두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었단 점이다. 내가 전세금을 못받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아무생각없이 2020년 학기를 마무리 하고 2020년 연말쯤 집관리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슬슬 내 계약이 마무리되어가고 전세금을 언제까지 반환해달라고 말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나: 안녕하세요 204호 세입자 용쥐입니다. 전에 말씀드린대로 계약기간이 2021년 2월28일로 되어있어서 이 날 까지 전세보증금 돌려주시면 이사 나가겠습니다. 계좌번호는XXXX-XXX-XXXXXX 입니다.

집관리부장: 지금 학교가 비대면을 해서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고있어요~~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나: 제가 그럴 수가 없습니다. 3월에 저는 출국을 하기 때문에 그 때까지 반드시 주셔야합니다

집관리부장: 네네~근데 지금 상황이 안좋아서요~~조금 더 시간을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저 물결표시부터 정말 날 열받게 했다. 집관리부장은 항상 메세지에 저 물결표시를 붙이는데 누굴 놀리는 것 같았다. 그 뒤로부터 여러번 문자를 해도 대답은 언제나 똑같았다. 코로나로 방이 안나가고있다. 세입자가 안들어와서 돈이 없다. 우리도 힘들다.(너 힘든데 왜 나까지 힘들게하냐ㅡㅡ) 상황이 골치아팠던 이유는 내가 졸업 후 유학을 가야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듬해 3월달에 미국으로 출국이 예정되어 있었고, 실제 점유를 하지 못할 경우에는 전세금 대항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이도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미국 출국을 미룰수가 없었기 때문에 난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찾았다. 전세금 대항력을 잃지않고 이사를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심지어 잘만 하면 전세금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