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호러스토리

[전세호러스토리] 4부 - 동네 유명인 (어..아주...유명한...어... Ship Shake It?)

용쥐 2025. 7. 27. 05:11

[이전 이야기]

 

임차권 등기명령을 하러 방문한 법무사 사무소. 담당 법무사는 임대차 계약서를 보자마자 뭔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네 유명인?

'집을 샀다' 라는 말을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등기 쳤다'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부동산 소유권을 등기소에 등록하기 때문이다. 나도 20대 중반의 나이에 첫 등기를 치게됐다. 물론 소유권이 아닌 채권을...

 

임차권 등기명령을 위해 방문한 법무사 사무소에서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임대한 건물주가 그 동네에서 꽤나 많은 수의 부동산 (대부분 원룸빌라)을 갖고있었고 당시 코로나 사태로 돈 흐름이 막히게 되면서 수 많은 임차인들에게 보증금 지급을 미루고 있었단 사실이다. 해당 법무사 사무소에도 나랑 비슷한 경우의 사람이 굉장히 많았고 나랑 같은 건물 혹은 같은 건물주의 다른 건물의 학생들도 꽤 많이 임차권 등기명령을 하기위해 이 법무사 사무소를 들렸던 것이다. 내가 살던 건물만해도 매물이 거의 50개는 되었었고 그런 건물들이 그 동네에 꽤 많이 있었으니 관련된 피해자들의 수가 엄청많았을 걸로 예상이 된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마침 그 당시 뉴스에서 빌라왕이라느니 전세왕이라느니 큰 사기사건이 많이 보도가 되어서 사태가 꽤 심각해진것 같았다. 일단 법무사에게 임차권 등기명령을 의뢰했다. 그 당시 나는 몇개월 이내에 돈을 돌려받으면 법무사가 임차권 해지를 해줄 수 있게 나의 신분증과 인감도장을 맡겨놓았다. 이때까지만해도 당해년도 안에 보증금을 다 돌려받을 줄 알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일 이후로 법무사님을 볼 필요는 없었다...ㅠ

 

드디어 만난 건물주

 

임차권 등기명령을 한 후 이제 해당 건물의 등기부 등본을 떼 보면, 내 이름과 금액이 나온다. 법적으로 나는 이 집에 대한 채무가 있단 사실이 등기부 등본에 기재가 되어있었다. 이때 나는 임차권 등기명령을 가지고 집주인과 협상을 해볼생각이었다.

 

법무사에게 들어본 결과 지금 이 집주인에게 돈을 못받은 사람을 줄 세우면 운동장 세 바퀴고, 이 상태로 가다간 부동산들이 줄줄이 경매로 넘어갈테고 그렇게 되면 나의 보증금은 불확실해 질 수 있다. 이 건물엔 근저당권도 9억 정도 잡혀있었고 임차인도 매우많아 낙찰금액이 크지 않다면 빈털터리가 될 확률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래서 내가 계획한 것은 '보증금의 일부 (80%목표) 라도 먼저 돌려주면 임차권 등기를 해제해주겠다' 라는 협상이었다. 이대로 가면 다 잃을 수 있음 vs 일부라도 조금 건지기 중에 나는 후자가 조금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집관리부장하고만 얘기하다가 건물주가 (이사람들은 회장님이라고 부른다) 마침 서울 올 일 있어서 왔다고 본인들 사무실로 오라고했다. 이 건물주는 80대 할아버지로 거주지는 제주도였다. 그러나 사무소에서 본 건물주는 너무 정정한, 겉보기엔 60대정도로 볼 수 있는 그런 할저씨 (할아버지+아저씨) 정도였다. 역시 돈이 많으면 노화도 피할 수 있는건가 싶으면서도 '나 줄 돈은 없고 지 먹고 살 돈은 있나봐?' 하는 삐딱한 생각을 갖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내가 채권자고 그들이 채무자의 관계에 있으니 조금 더 당당하고 살짝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 제 돈은 어떻게 하실거에요?

 

건물주: 아..우리도 지금 아주 골치아파요. 지금 돈줄이 줄줄이 막혔고, 세입자들은 다 돈달라 그러고 아주 난리도 아니에요. 아니 새로 방을 구하는 사람이 없는데 저희도 어떡할지 모르겠어요. 대출도 더이상 안나오고 허참... 아니 이게 다 XXX (그 당시 대통령) 그 XX 때문이야....(중략)

 

역시 사람의 인격과 그 사람의 자산은 비례하지 않는다.

 

나: 그건 사장님 사정이고, 제가 상관할 일은 아닌것 같아요. 전 제 돈 받아야겠어요. 이미 임차권 등기명령까지 다 해놓았습니다.

 

나에겐 이 말이 일종의 협박이었다.

건물주: 아아 그런건 당연히 이 세입자분의 권리니까 하시면 되죠.

 

??.... 아무렇지않아하는 저들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건물주: 근데 저희가 지금 진짜 돈이 한 푼도 없어요. 그럼 일단은 올해 상반기까지만 좀 기다려주세요. 그 동안 연 5% 이자를 지급해 드릴게요. 여기 확인서도 써드릴게요

 

우리 동네 초등학교 후문 앞에서 하교하는 초딩들을 마치 걸어다니는 저금통 보듯이 바라봤던 중학생들처럼 당장 그 사람들의 주머니를 뒤져 전통있는 교환비 '10원당 1대'를 말하며 있는 돈을 다 찾아내고 싶었지만 법이 날 막았다.

 

당시 얘기를 한 시점이 3월, 확인서에는 8월 31일까지는 보증금을 돌려주기로 했다.

 

그 사람들의 말을 믿는 것 말고는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래는 당시 지급했던 확인서의 스캔본이다.

당시 작성한 확인서

 

결국 이렇게 찜찜한 확인서를 받고난 후, 나는 박사 유학을 위해 출국을 할 수 밖에 없었다.